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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 고대축구의 기원, 중세유럽의 축구, 현대축구

by 힐링스팟 2024. 11. 4.

축구 역사의 시작 고대축구의 기원

고대 중국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 한나라 시대에 추주(蹴鞠)라는 스포츠가 유행했습니다. 《사기》와 《한서》 같은 고대 문헌에는 이 스포츠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주로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연습되었습니다. 추주는 둥근 가죽 공을 발로 차서 상대방의 진영에 넣는 방식이었으며, 일부 규칙도 존재했습니다. 이 게임은 특히 한나라와 당나라 시대에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에피스키로스(Episkyros)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겨 보내며 공격과 방어를 펼치는 방식이었고, 발이나 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로마로 전파되어 하르파스툼(Harpastum)이라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하르파스툼은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공을 상대 진영으로 보내는 방식이었으며, 힘과 속도를 요하는 격렬한 경기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하르파스툼을 훈련의 일환으로 연습하며 체력과 협동심을 기르는 데 사용했습니다. 고대 중남미에서는 마야와 아즈텍 문명에서 우라마리츠(Ullamaliztli)라는 구기 경기가 존재했습니다. 이 경기는 공을 발로 차는 방식이라기보다 엉덩이, 무릎, 어깨 등을 이용해 공을 던지거나 상대편 진영에 보내는 형태였습니다. 이 게임은 종교적 의식과 관련이 깊었으며, 승패에 따라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등의 의식도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공을 이용한 놀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가죽으로 만든 공을 차며 노는 그림이 발견되었고, 이는 축구의 원형이 될 수 있는 활동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고대 축구는 문화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와 방식이 달랐지만, 공을 차거나 던져 목표 지점에 넣는 공통적인 목표가 있었습니다. 또한, 단순한 놀이의 차원을 넘어 훈련, 팀워크, 종교적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중세유럽과 축구

중세 유럽의 축구에는 지금처럼 규칙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단순히 공을 상대 진영으로 보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양쪽 팀의 인원 수도 제한이 없었고, 경기장도 특정한 크기나 형태가 없었습니다. 마을과 마을이 서로 경쟁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교회 앞, 넓은 들판, 심지어 마을 거리까지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중세의 축구는 매우 거칠고 폭력적이었으며, 때로는 매우 위험한 스포츠로 간주되었습니다. 선수들은 공을 차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편을 밀치거나 넘어뜨리는 등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당시엔 안전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부상자가 자주 발생했으며, 때로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경기는 하루 종일 진행되기도 했고,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종종 이런 격렬한 축구 경기가 사회적 문제로 비춰졌습니다. 중세 유럽의 일부 왕들은 축구 경기를 사회 혼란의 원인으로 보고 이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와 헨리 4세는 축구 경기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하여 축구를 금지하는 법령을 내렸습니다. 특히, 축구 경기가 자주 발생하는 날에는 다툼이 일어나거나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왕실에서는 축구 경기를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축구는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이어졌습니다.

중세 축구는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갔습니다. 스코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풋볼 경기가 존재했으며, 지역마다 경기 방식이나 규칙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오늘날의 축구와 럭비가 혼합된 형태의 경기인 칼초 스토리코(Calcio Storico)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는 피렌체에서 유래된 것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막을 수 있었던 격렬한 경기였습니다. 중세 유럽의 축구는 거친 스포츠였지만, 19세기에 들어 점차 규칙이 정비되고 체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축구를 현대 스포츠로 정립하기 위해 축구 협회(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었고, 이로 인해 오늘날의 축구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축구의 기틀

현대 축구의 기틀은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축구는 체계적인 규칙이 확립되고, 경기장이 표준화되었으며, 조직화된 축구 협회가 등장하면서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축구와 럭비가 명확히 구분될 필요성이 생기면서, 1863년 잉글랜드 런던에서 축구 협회(Football Association, FA)가 창설되었습니다. 축구 협회는 당시 통일된 규칙을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최초의 공식 축구 규칙을 제정했습니다. 이 규칙에서는 손을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공을 발로 차서 상대 진영에 넣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또한, 공의 크기와 경기장의 크기 등도 표준화하여 경기 환경을 통일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FA에서 제정한 규칙은 오늘날의 축구 규칙의 기초가 되었으며, 점차 개정되면서 발전해갔습니다. 주요 규칙으로는 오프사이드 규칙, 프리킥과 코너킥, 페널티킥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1891년 페널티킥 제도가 도입되면서, 경기가 보다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개선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규칙들은 이후 세계적으로 표준화되면서 다른 국가에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현대 축구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리그 경기의 시작입니다. 1888년, 잉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축구 리그인 ‘풋볼 리그(Football League)’가 출범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다양한 축구팀이 참가하여 정기적인 리그 경기를 치렀고, 이러한 리그 시스템은 축구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리그 경기는 클럽 팀 간의 경쟁을 촉진했으며, 점차 리그 시스템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축구가 유럽과 전 세계로 퍼지면서 국제적인 규칙과 대회를 관리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 축구 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FIFA)이 설립되었습니다. FIFA는 전 세계 축구를 총괄하는 기구로, 국가 간의 경기와 대회에 대한 규칙을 표준화하고 관리했습니다. FIFA는 월드컵과 같은 국제 대회를 주관하며 축구의 국제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FIFA는 축구의 세계화를 위해 국제 대회 개최를 추진했고, 그 결과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번째 FIFA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월드컵은 국가 대표팀이 모여 경쟁하는 대회로,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월드컵의 성공으로 인해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